O - 기분이 울적하거나 마음이 산란할 때 글을 써야 하는 이유

우울증 발병에 영향을 미치는 심리적 요인들 중 연구가 많이 된 것이 반추(rumination)입니다. 반추는 소가 여물을 되새김질 하듯이 반복적으로 어떤 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으로 사고 내용 자체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다만 우울증에서의 반추는 과거의 사건이나 현재의 스트레스 요인에 대해 반복적이고 부정적인 방식으로 생각하는 것을 의미하며, 우울증이 깊어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반추는 마치 고장난 레코드판처럼 같은 구간을 계속 반복하는 상황에 가깝습니다. 반면 창의적 사고에서처럼 생각이 확산되며 다양한 각도에서 상황이나 사건을 바라볼 수도 있습니다. 한 연구는 내외부 자극에 쉽게 주의가 분산되는 ADHD의 특성이 독특하고 창의적인 반응을 낳는 유연한 사고에 연관될 수 있음을 언급합니다. 반추를 하는 사람과 달리 ADHD 경향을 지닌 사람은 다양한 자극에 주의가 분산되는 만큼 의외의 지점에서 문제의 해법을 찾을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죠.^[1]

...creative people have a more flexible association network. (중략) This flexible thinking enables people to generate unusual and creative responses and may also relate to the diffuse attention found in ADHD.

하지만 이 연구에서 ADHD로 진단을 받은 사람의 경우에는 이런 인지적 유연성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도 주목해야 합니다. 우울증에서의 반추에서 너무 경직된 주의 초점이 문제가 된다면 ADHD에서는 주의의 초점이 너무 여러 곳에 맞춰지고 그만큼 생각도 비약적으로 확산이 되는 것이 문제입니다.^[2]

유연하게 생각한다는 것은 확산적으로 생각하되 생각의 구심점을 잃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3] 너무 느슨하지도, 또 너무 경직되지도 않은 방식으로 생각하는 것이죠. 우울증에서는 생각이 경직되기 쉬우니 다양한 관점에서 상황이나 사건을 바라볼 수 있도록 생각을 확산시키는 것이 필요하겠고, ADHD에서는 생각이 너무 이리저리 통통 튀니 주제에서 너무 벗어나지 않도록 생각의 과정에 울타리를 쳐줄 필요가 있습니다.

우울증의 인지치료가 생각의 확산을 돕는 직간접적 치료 작업이겠고, 우울증 환자에서 일련의 단어 배열을 통해 생각의 확산을 돕는 직접적 개입이 긍정적 정서의 향상을 가져옴을 밝힌 연구도 있습니다.^[4] ADHD에서 목표 행동을 계획하고 실행하며 모니터링하는 실행기능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은 그 자체가 행동을 위한 것인 동시에 생각 통제의 노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글쓰기 과정 자체는 여러 단편적인 생각을 하나의 통일된 주제로 엮어내는 확산적이면서도 수렴적인 과정입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자료를 모으면서, 최소한 정신장애 진단을 받지 않은 사람에 국한할 때, 글쓰기가 반추로 인해 우울이 깊어지는 것을 막고 평소와 다름 없는 평범한 기분일 때는 긍정적인 정서를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궁금함이 생깁니다.

저는 부정적인 사건에 대해 반추하게 될 때 일기를 쓰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확실히 우울이나 불안을 감소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고 느낍니다. 또한 평범한 기분에서 쓰는 이런 글은 기분을 가볍게 만듭니다. 딱히 어떤 감정 단어로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몰입을 하고 난 후에 느끼는 가벼움은 긍정적 정서에 속하는 것 같고요.

또한 ADHD를 지닌 사람에서와 같은 수준은 아니라 하더라도 생각이 이리저리 흐르며 구심점을 찾기 어려울 때, 확산적 사고와 수렴적 사고를 오가며 인지적 유연성을 발휘해야 하는 글쓰기가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생각하고 쓰는 것이 아니라 쓰면서 생각의 범위를 좁혀 나가는 것이 글쓰기의 본질에 더 가깝다고 여기기 때문에, 마음이 산란해질 때는 일단 뭐라도 써보는 것이 좋습니다.